한국전쟁 발발 전 고성군은 공산군 휘하의 영향을 받는 지역이었다. 당시에도 고성에는 자연경관이 뛰어난 장소가 많았는데, 이러한 연유로 공산당 간부들이 휴양지로 즐겨 찾았다고 한다. 당시 김일성도 고성에 수차례 방문하였고, 한때 별장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머물던 건물은 현재까지 남아 고성의 대표적 관광지로 남았는데, 이것이 바로 김일성 별장이다.
주차장 입구 관광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 김일성별장을 비롯한 화진포 내에 모든 실내전시관은 유료입장이지만, 전시관 입구마다 별도의 매표소가 없기 때문이다. 입장권의 가격은 단돈 3,000원이다. 화진포의 모든 실내전시관에 입장할 수 있다.
매표 후 해안가 방면으로 걸어보자. 해안 인근에 포진한 야트막한 언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언덕 위에 근사한 성이 한 채 보인다면 아주 잘 찾아간 것이다. 그곳이 바로 김일성별장이다.
짤막한 언덕길에 오르니 어느새 이국적인 성채를 눈앞에서 마주한다. 중세시대 유럽영화에서 본 것만 같은 성의 모습은 유럽의 궁전을 떠오르게 한다. 성 입구 앞에서도 또 하나의 절경이 기다리고 있다. 사파이어처럼 푸르게 빛나는 동해안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참으로 별장 자리 한번 잘 잡았다, 생각했다.
성의 내부는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지 않고, 전시공간으로 변환되어 있었다. 본래의 모습을 볼 수 없음에 아쉬웠지만, 나름 그곳에 관한 세세한 정보를 알아갈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일부 공간은 김일성이 별장으로 활용하던 당시의 모습으로 재현되어 70년 전 모습을 짐작게 했다.
전시공간 한편에 자수정이 박힌 벽난로가 자리하여 눈길을 끌었다. 김일성에 의해 설치된 것으로, 벽난로에 타오르는 불꽃을 더욱 선명하게 감상하기 위한 용도였다고 한다. 사치스럽다는 표현이 마땅하지만, 실로 그 화려함이란 탄성이 절로 나게 했다.
김일성별장이 가진 화려한 모습 이면에는 역경이 가득한 아픔의 역사도 숨어있다. 처음 김일성별장은 1938년, 선교사 셔우드홀의 의뢰로 독일 건축가 베버에 의해 지어졌다. 본래에는 셔우드홀의 예배당으로 사용되었으나, 태평양전쟁이 벌어져 출입이 금지된 적이 있다. 이후 김일성의 별장으로 사용되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소실되어 흉물이 되기도 했으나, 1964년 온전히 복구되었다. 한때 군 장병들의 휴양시설로도 사용되었으며, 2005년 새 단장에 들어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던 건물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것이 달라 보일 만큼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대비되는 공간이었다.
전시물 외에도 볼만한 것은 또 있다. 화진포와 동해안 일대를 감상하기 좋은 전망공간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성 2층 내부에 동·남·북 쪽 방향으로 설치된 창문이 그중 하나였다. 아름다운 동해안이 내다보이는 창문이 상시개방 되어있고, 운치 있는 분위기까지 더해지니 풍경에 매료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사방이 탁 트인 야외옥상도 두말할 나위 없다. 끝도 없이 펼쳐진 화진포 해변과 호수, 동해안의 지평선이 손에 잡힐 듯 눈앞에 아른거렸다. 정말이지 그곳에 서 있으면 다시 내려가고 싶지 않은 심정이랄까. 이곳을 왜 휴양시설로 활용하였는데 쉽게 이해되는 부분이었다.
화진포가 선사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자연이 빚은 낙원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72만 평에 달하는 호수가 동해안과 맞닿아 있고, 주변 일대로는 울창한 송림이 빼곡하다. 자연이 부린 마법과도 같은 이 수려함 때문일까, 화진포에는 김일성 외에도 이승만, 이기붕이 별장을 마련하여 현재까지 보존되어오고 있다. 이를 비롯하여 생태박물관, 해수욕장, 습지, 금구도 등 무수한 관광자원이 분포하여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수많은 유명인사도 반한 고성의 낙원, 화진포, 김일성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