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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 문화관광

새로운 도약 미래의 땅 고성군

아름다운 고장! 고성의 신비로운 매력에 푹 빠져보세요!

청간정 설악과 동해가 상조하는 고성의 명루

청간정

국문학의 시조라고 불리는 송강 정철은 청간정의 수려함을 ‘관동별곡’으로 노래했다. 청간정은 고성군 토성면 동해안과 맞닿은 산기슭에 자리한 누각으로, 강원 북부지대 최대규모의 누각이다. 청간정에서는 남과 북으로 청간천 하구와 기암절벽이 내다보이고, 동서로는 동해안과 설악의 능선이 펼쳐지니 사방팔방이 진경산수가 따로 없다. 청간정의 경관은 강원도 내에서 으뜸을 자랑하여 관동팔경에도 손꼽힌다.

청간정 오르는 길을 화사하게 핀 배롱나무가 에스코트한다. 백 걸음 남짓 짧은 산길을 오르면 깎아지른 듯한 벼랑 끝에 선 청간정이 나타난다. 2층 팔작지붕 구조의 청간정은 열두 개의 돌기둥이 받치고 있을 만큼 여느 누각보다 거대하다.

淸澗亭(청간정)이라고 쓴 두 개의 현판이 누각 내외에 걸린 것이 독특하다. 바깥쪽 현판은 1928년 독립운동가 청파 김형윤에 의해 다시 쓰인 것으로, 원래 우암 송시열이 썼던 현판은 유실되었다. 안쪽의 현판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친필이다. 민심을 거스른 그의 업적에 반해 그의 친필은 뚝심 있게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민족을 위해 싸운 독립운동가와 민족의 염원에 의해 망명 된 전 대통령의 친필을 나란히 보고 있자니, 그것참 아이러니하다.

청간정은 도 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었을 만큼 의미와 가치가 깊다. 오래된 역사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애석하게도 창건연대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지만, 1520년 중수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더 이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슬픈 역사도 있다. 조선시대 말 갑신정변이 일어나 소실되어 1920년 복원되었지만, 한국전쟁 당시 다시 소실되어 최규하 대통령에 의해 1981년 복원되었다.

청간정에는 1980년대 복원 당시 최규하 대통령이 지은 시문이 편액으로 걸려있다. 비록 두 줄이 전부인 짧은 글귀지만, 그가 청간정의 풍경에 매료되었음을 쉽게 헤아려볼 수 있다. 시문의 내용은 嶽海相調古樓上악해상조고루상 果是關東秀逸景과시관동수일경이라 하여 의미는 다음과 같다.

설악과 동해가 상조하는 고루에 오르니
과연 이곳이 관동의 빼어난 승경이로구나

청간정의 풍경에 반한 것은 송강 정철, 최규하 전 대통령뿐만이 아니다. 단원 김홍도를 비롯한 연객 허필, 광지 강세황, 겸재 정선 등 조선시대 최고의 화가들도 청간정의 경치를 우아한 그림 속에 담았다. 김홍도는 정조의 명에 따라 관동 일대를 돌며 명승지를 그렸는데, 그때 완성한 ‘금강사군첩’ 속에 청간정의 모습이 담겨있다. 정선은 ‘관동명승첩’에 삽입된 ‘청간정도’를 그렸고, 허필은 ‘관동팔경도병’을 그리며 청간정을 심어 넣었다. 이밖에도 강세황의 ‘풍악장유첩’, 현대화가 이의성의 ‘해산도첩’에서도 청간정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화가, 사대부를 비롯한 유명인들이 찾아온 청간정. 흔히 청간정과 같은 오래된 누각에서는 벼슬 높고 권세 가진 이들이 술판을 벌이는 향락의 장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청간정은 공인되고 품격있는 연회나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자리가 주로 열린 곳이라고 전해진다. 사대부들은 학문적 재간을 과시하며 경연을 펼치고, 시조를 읊기도 했다. 역사만큼이나 결이 고운 누각이라 할 수 있겠다. 조선시대 인조 때의 유학자 택당 이식도 고성의 누각을 찾아 근사한 시문을 남겼으니, 청간정 풍경을 감상하며 시문을 음미하여 보자.

天敎滄海無潮汐천교창해무조석 / 하늘의 지시로 바다엔 밀물 썰물 없고
亭似方舟在渚涯정사방주재저애 / 방주 같은 정자 하나 물가에 서 있네
紅旭欲昇先射牖홍욱욕승선사유 / 붉은 해 솟으려고 광선 먼저 창문을 쏘고
碧波纔動已吹衣벽파재동이취의 / 푸른 물결 일렁이자 옷자락 벌써 나부끼네

童男樓艓遭風引동남루접조풍인 / 남동녀 실은 배 순풍에 간다 해도
王母蟠桃着子遲왕모반도착자지 / 동왕모의 복숭아는 여는 시기 까마득하여라
怊悵仙蹤不可接초창선종불가접 / 신선 자취 접하지 못한 아쉬움 속에
倚闌空望白鷗飛의란공망백구비 / 난간에 기대서 나는 백구만 바라보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