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메뉴 바로가기
고성군 홈페이지 한번에 바로가기 열기

고성군

새로운 도약 미래의 땅고성

간성읍 소개

간성읍 이미지
간성읍 소개
  •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간성로 67번길 14
  • 033-681-2006
이장협의회 주민자치회

우리 간성읍은 동부 동안형 기후로 산간 고랭지와 해안 평야지 기후가 공존하는 지역으로서 흘리 "피망", 해상리 "블루베리", 어천리 "라벤더 축제"가 유명하며, 동호리 해안주변으로 자전거 도로와 해맞이 소공원이 위치하고 있어 주민과 관광객을 위한 평안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기에 언제나 다시찾고 싶은 힐링마을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을유래

  • 하리

    현 우체국 주위에 못이 있다고 하여 속칭 연당(蓮塘)마을이라고도 하였다. 옛날에는 현재의 읍사무소 자리에 현청(縣廳)이 있었는데, 그것이 조선시대에는 간성군청이었다. 그후 읍사무소 소재 마을로 하리라 부르다 1973년 하1,2리로 분할 됐다.

  • 하 1 리

    옛날엔 성안 마을엔 삼정(三井), 사지(四池), 오목(五木)이 있었는데, 하1리에 그중 2정, 3지가 있었다고 한다. 1994년도에 군청앞 우물 1개소를 정비했다.

  • 하 2 리

    원래 간성읍 시내는 상, 중, 하로 구분되어 있었으나 행정수복과 함께군청 소재지가 되었다가 인구증가와 구역확장으로 인해 중리(中里)를 하1,2로 구분하게 됐다. 군청소재지인 수구마을로써 '삼정(三井) 사지 오목(五木)'의 하나인 은행나무 한 그루(수령 약700년)와 우물 2개소가 남아 있다.

  • 신안리

    통일신라이후 강성현이라는 골이 생긴 후 새골짜기라는 골짜기와 안심골이라는 골짜기가 있었는데 조선 중엽, 즉 300년전에 마을명을 정할 때 성내의 안심리(安心里)와 성외의 신성리(新城里)의 머릿자를 따서 신안리(新安里)로 부르게 됐고,그후 인구가 점점 늘어 1955년경부터 행정구역을 신안1,2,3,4리로 구분 하였다가, 1994년 아파트 신축을 계기로 신안5,6리로 추가 분할 됐다. 신안리에는 속칭 시장마을(신안1리), 시장 변두리(신안2리), 정거장 거리(신안3리), 남천세거리(신안4리)등이 있다.

  • 동호리

    옛날부터 전해내려 오는 구전에 의하면 지금부터 약300년전 당시 선조들이 마을을 개척할 때 갈대가 너무나 무성히 자라 있는 갈대밭이었기에 갈벌이라 칭하였다가 1880년대에는 신선이 놀다가는 아름다운 마을이라 하여 왕곡면(선유리 仙遊里)로 개칭했으며 한일합방전, 즉 1940년대 이후로 동쪽에 호수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동호리(東湖里)로 다시 개칭하여 전해내려 온 것이 오늘에 이른다. 마을은 구석말과 넘어말로 구분하는데 구석말은 3반의 산밑 구석에 위치하여 있다 해서 그렇게 불리워졌고, 넘어말은 마을회관 앞 마을안길을 중심으로 길건너에 있는 마을을 넘어말이라 칭했다. 또한 농경지는 수삼넘어 앞 무논, 아래들, 새내들, 벌미동산, 염전밭 등으로 구분되어 불리우는데, 그 명칭마다 각각 유래와 이유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수삼넘어는 본마을에서 봉호쪽으로 가는 논골을 칭하며 이조 중엽 북천강이 수구너머로 흘러 내려 물이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였다해서 그렇게 불리워졌다.또한 도로에서 마을 안쪽을 마을 앞에 있는 무논이라 하여 앞 무논, 동호2리쪽으로 내려오는 들아래 남천강과 금속천이 남천으로 흐르지 않고 마을 쪽으로 흘러 농경지 양천천 사이에 있었다 하여 새내들이라 각각 칭했고, 넓은 들 사이에 1㎢정도의 임야가 우뚝 솟아 있는 부근을 벌미동산이라 불렀으며 마을 하구안에 들어있는 들이라 하여 아랫들이라 칭했다고 한다. 한편 염전밭이란 이름은 왜정때 백사장에다 1자 정도의 진흙을 깔고 바닷물로 소금을 만들었다 하여 바닷가 주변을 염전밭이라 불리워오고 있다.

  • 봉호리

    마을의 고을명칭은 골말, 버덩말, 벤밭골, 방죽골, 수재밭골, 안장골, 돌고지, 아랫들, 개까, 굴구머매 등의 여러가지 속칭으로 불리워 왔다. 고기(古記)에 의하면 옛적에는 왕곡면에 속하였던 때도 있었다. 봉호리(蓬湖里)로 "호(湖)"자를 마을 이름에 썼으나 지형적으로 봉호리동 앞에 산이 가로막혀 중간의 길이 동리 앞을 졸라매게 되어 마치 병마개를 졸라맨듯한 형국이 되어 봉호리(蓬壺里 : "호(壺)"자는 병마개 '호'자임)리명이 고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상리

    오랜 옛날부터 소농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골짜기라 하여 속칭 소농골이라 불렀으며 지금은 쇠동골이라고 부르는데 1973년 행정구역 분할로 현재의 상1리 2반이 됐다. 또 간성 시가지 주변에 있던 읍성의 서쪽문이 현재 고성중·고교로 가는 국도상에 있었다고 하여 그 서쪽문 일대를 서문턱이라 불렀으며 지금은 그 일원이 상1리 4반이 됐다.

    • ① 원상리(元上里) : 성안에 위치한 마을
    • ② 용연동(龍淵洞) : 일명 쇠롱골
    • ③ 서문밖(西門外) : 상리고개부터 중고등학교 가는 길
    • ④ 방축골(防築洞) : 중고등학교 마을
    • ⑤ 천하정(天下井) : 공설운동장 주변마을
  • 간촌리

    지금부터 약 600년전 마을 원님의 부친이 명하기를 용암이라 하였다하여 그후 속칭 구암동(龜岩洞)이라 불리워지다가 약 300년전부터 물흐르는 방향이 간방으로 흘렀다하여 간촌이라 칭하여 현재까지 전해 내려온다. 여기서 간방이라 함은 간촌에서 흐르는 물이 북천(교동리 앞)위로 흘렀던 방향을 말하는 것이다.

  • 교동리

    옛날(구한말) 趙씨 가문이 마을을 창설하였다 하여 조동이라 칭하여 오다가 거진읍 대대리에서 향교를 이전 설립하면서 유교를 가르치는 마을이라 하여 교동(校洞)이라 칭하여 전해 내려온다. 마을 행정구역상 3반부터5반까지를 웃말(개보살)이라 하고 중간위치인 1반에서 2반까지를 중간말(참보살), 그리고 나머지 1반을 아랫말이라 부른다.

  • 해상리

    간성읍 마을 각리 끝에 위치하여 있었기 때문에 속칭 위촌마을이라 불렀다. 해상1리 서쪽으로 8㎞지점에 구절폭포가 있어서 이 폭포에서 흐르는 물을 우수라 하였으며 그 상류지역을 우천 이라 했는데 우천의 우향으로 샘이 솟아 임천리(林泉里)라 불리워진 것이 지금의 해상1리가 됐다. 또 그 우수의 하류에 있는 마을을 번개(磻溪)라 부르는데 그것이 지금의 해상2리가 되었다. 구절폭포 밑에는 육송정(六松亭)이라는 소나무가 있었는데 한 뿌리에서 6개의 나무가 뻗어나와 그렇게 불렀다고 하나 지금은 2개의 나무만이 현존하고 있다.

  • 광산리

    구전에 의하면 원래 간성 북천강 상류에 있는 부락으로 강의 북쪽마을을 만산(晩山)이라 하였고 강의 남쪽을 광평(廣坪)이라 하였는데 일제때인 1915년 행정구역 개편시 "광평"에서 '광(廣)'자와 "만산"에서 '산(山)'자를 따서 광산리(廣山里)라 칭하고 1, 2, 3, 4리로 분할, 명명하게 됐다. 광산1리는 행정상 3반으로 나뉘어졌는데 1반을 안말, 2반을 앞말, 3반을 새마을이라 칭하고 마을 앞뜰을 정자평이라고 부른다.

  • 어천리

    고기에 의하면 당초에는 내어탄리(內於呑里)라고 하였다가 마을의 남쪽으로 200m 지점에 박씨 소유의 산이 있었는데 그 생긴 모양이 魚斗처럼 생겼다하여 그 뜻을 따서 어룡리(魚龍里)라 칭하였다고 한다. 그후 언제부터 인지 어천리(魚川里)로 불리워지다가 행정구역 개편시 1,2리로 나누어졌다. 일설에 의하면 어변형용, 즉 '고기가 변하여 용이 되었다'는데서 본따 어룡리(魚龍里)라 불렀다고도 한다.

  • 장신리

    장신1리는 속칭 장밭이(長田)라고도 부르는데 그 유래는 정확치 않으나 지금부터 약450년전(조선 중종에서 인정시대)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때는 마을앞이 모두 밭이었고 그 밭의 규모가 장신2리까지 길게 분포되어 장전(長田)이라 부르고 부락이 성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후 1919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장신리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행정구역상 1,2리만이 있으며 1,2반을 아랫말, 3, 4반을 웃말이라고도 부르며, 장신2리는 새마을이라 부른다.

  • 탑동리

    탑동리로 불리우기 전에는 마을앞 농경지에 수렁이 많다하여 속칭 고래술이라 불리우다가 마을에 문씨가 입주한 후, 서북쪽 50m 위치한 곳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탑을 발견하였다 하여 탑동이라 칭하여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 금수리

    금장동(金藏洞)이라 불러오다 군내면 당시 금장동으로 부르게 되었으며, 그 아랫골을 물이 흐른다고 물골, 수동으로 부르다가 두 이름의 머리자를 따서 1914년 3월 1일부터 금수리로 고쳐 부르고 있다. 1929년 4월에는 당시 일본인 조일(朝日)이 금수리 산129번지에 금이 저장 된 줄 알고 2년간 금광을 찾다 금을 못찾고 재산을 모두 잃었다고 한다. 속명은 김장골이다.

  • 진부리

    진부리의 특산물은 재래봉(석청)꿀이 유명하여 당귀등 약초가 많이 생산 된다. 최근 곰취의 하우스 재배로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다. 매년 3월 3일에 삼월 삼신제와 산신제를 지내고 8월 14일에 두 번째 산신제로 풍년을 빈다.

  • 흘 리

    산림이 울창하고 산이 높다하여 흘리(屹里)라 불렀고 속칭 밖(外)흘리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마을의 면적이 광활하여 지역별로 구분할때 칭하던 이름으로 현재까지 계속 사용하고 있다.